"주님 옷자라에 떨며 손을 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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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호주로 이민을 온 사람이라면 사회복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의 선진 사회복지 제도의 혜택을 염두해 두고 호주 이민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호주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많은 복지국가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이 영국의 그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 사회복지제도는 영국의 윌리엄 베버리지의 의해 기틀이 잡혔고 사회보장 제도 라는 이름으로 법률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베버리지는 오랫동안 구세군의 사역을 연구하고 관련된 책을 쓰기도 한 구세군 전문가 였습니다. “구세군의 사회사업" 이라는 책을 통해 윌리암 부스의 “최암흑기 영국과 그 출로" 라는 책과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 도시공동체, 농장공동체, 해외공동체의 세 기둥과 도시 곳곳에서 실행되고 있는 염가 숙소와 급식소, 가정폐품 수집소, 인력소개소 등등의 구세군 사역을 철저히 공부하여 정부보고서에 반영하여 영국과 전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최초의 복지정책을 수립합니다.
윌리암 부스 구세군 창립자는 마차를 끄는 말은 잠을 잘 마구간과 배를 채울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직장이 있지만 영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 상태이다. 우리의 일차적 목적은 이 말만큼만 이라도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런던 부도 노동자 8천명과 건축노동자 10만명 중 9만명은 실직자였습니다.
윌리암 부스는 전당포에서 일하면서 평신도로서 설교를 하던 시절에도 7주 동안 1700명을 회개 시킨 명설교가 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크셔에서 9개월 동안에 3000명을 회심 시킨 능력 있는 주님의 장중에 잡힌 부흥사 였습니다. 얼마든지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지만, 그는 영국의 가장 어두운 뒷골목으로 갔습니다. 그의 신앙적인 도전이 사회보장제도와 구세군 이라는 열매를 통해 수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돕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 성결, 보혈의 피, 성령의 불로 대표 되는 구세군의 많은 종류의 사역은 조금씩 모습을 바꿨지만 그 정신만은 명확하게 실천 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이렇게 한 사람의 헌신자, 한 사람의 작은 믿음을 통해 어마 어마한 결과를 만들곤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큰 수확을 얻게 되듯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한 여인의 믿음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고 그 여인이 받은 구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 볼때 큰 은혜 있으시길 축원 합니다.
주님은 데카폴리 지역, 거라사의 이방전도를 마치시고 다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돌아 오셨습니다.
떠나시기 전과 마찬가지로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주님을 환영합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여행에서 돌아왔을때, 많은 사람이 환영해주는 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주님을 반갑게 맞습니다. 그리고 그 환영의 인파가 많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8:45 (NKRV)
...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조용한 시골 동네가 주님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군중을 이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사람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모였지만, 본문이 집중하는 두 가지의 만남이 있습니. 그 첫번째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그녀에 대해 몇 가지로 설명합니다.
-혈루증 환자
-12년이 되었고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한 상태
혈루증은 여성의 자궁에서 불규칙적 출혈이 나타나는 증상을 말합니다. 언제 출혈이 날지 알지 못하여 외출이 불편하고 율법적으로는 사회와 격리 시키는 증상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면에서 불편함을 넘어서 절망적이었고 고립되었습니다.
또한 이 증상이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여인을 괴롭혔다는 것은
“5:25 혈액 배출. 그 여성의 상태는 신체적으로 쇠약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결혼(레 20:18)과 일반적인 종교 생활(레 15:25-33)에서 그녀의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The Reformed Study Boble:ESV Version 2015 Edtion)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의 유출이 그치면 이레를 센 후에야 정하리니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든 면에서 자격이 박탈된 상태에 놓인 여인 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 증상을 고치고 싶었을까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여인은 수 많은 의사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이 여인을 괴롭게 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의사들이었습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많은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고 완치 되기를 소망했지만 매번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증상이 악회 되었습니다.
12년간 지속되온 출혈로 몸은 철분이 부족한 빈혈 상태였을 것이고 점점 피폐해져갔습니다.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별에 별것을 다 다려 먹고, 좋다는 것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서 열심히 먹어도 봅니다. 그리고 잘 고친다는 병원은 다 찾아 다닙니다.
당시에는 그 혈루증에 좋다는 약으로 타조의 알을 갈아서 베옷에 넣고 다니면 된다거나 흰 암나귀의 똥 안에 들어있는 보리알을 지니고 다니면 낫는다거나 하는 민간 처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조나 흰 암나귀는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돈이 많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좋다 누가 잘 고친다더라 해서 다 따라 다녀도 다른 사람은 다 낫다는데, 나만 안낫고 나에게만 효혐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프더라도 병이 있더라도 오늘 하루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주일에 주님께 나와 예배 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모험을 해야 할 때
신앙의 모험을 해야 할 때
이 여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을 하기로 작정 합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군중들 속으로 몰래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율법에서는 부정하다 하여 사람들이 모인 곳에 올 수 없게 정하고 있지만, 이 여인에게는 혈루증을 고치고하는 갈망만이 가득하였고 예수님만은 꼭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율법과 사회적 비난을 무릎쓰고 주님께 나아간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행동 입니다. 몰래 주님의 뒤를 따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다는 것은 발각 되었을 경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죽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이 여인도 그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믿음이 그 행동에 있었기 때문 입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어쩌면 그 여인의 믿음은 신학적으로 보면 아주 미신에 가까운 행동 일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지금 까지 12년 동안 만난 의사들이 행한 방법에 비하면 오히려 말도 안되는 치료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특징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정확했다.
믿음의 대상이 정확했다.
그 믿음의 대상이 의사나 약이 아니라, 그 병의 증상까지도 주관 하시고 없게 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 다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길위의 전도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아주 가볍게 대화를 나눕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아니요, 한번도 믿은 적이 없지요"
“당신도 가끔 기도 할 때가 있습니까?”
“네, 가끔 있습니다.”
“누구에게요?”
“그냥 막연하게 크게 소리지를 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거기 어딘가에 누가 있다면 들어 달라고 소리지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하나님, 이 분은 당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고 합니다. 주님, 주님을 이분에게 보여 주시옵소서. 그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도 빠짐 없이 듣고 있었음을 알려주세요. 이 분의 인생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심을 느끼게 해주세요.”
그 무신론자 라던 여자분은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사실, 나는 화가 많이 납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고 외로울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께 화내보세요.” “그분은 당신의 그 아픈 마음을 듣고 싶어 하세요.”
여러분 이 대화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저도 매주 금요일은 아니어도 거의 매주 금요일에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방어적이던 분들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압도 되어 슬퍼하고 기도해주겠다는 말과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에 무너져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누구나 기도 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들어주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몰라 누구에게 기도 해야 할지 모르고 흑암에 앉아 홀로 힘겨워 하는 영혼들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알려줘야 합니다. 그분을 만나면, 그분의 옷자락 이라도 만지면, 그분과의 관계가 시작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다른 사건 통해, 이 여인의 믿음이 순수하고 빛나는 신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날 계획이 없으셨습니다. -물론 섭리 가운데, 주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지만…-
야이로 라고 하는 회당장의 딸을 고쳐주시기 위해 가시던 길이었습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 여인을 고쳐주고 대화 하는 중에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옵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은 찢어졌을 것입니다.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주님이 조금만 빨리 내 딸에게 갔더라면,…’ 하는 원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주님의 관점에서 광풍은 평범한 물결과 바람에 불과 합니다. 또한 소녀의 죽음은 주님 앞에서는 그저 ‘자는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울며 통곡하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습니다.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혈루증 걸린 여인과 이 비웃는 사람들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지점 입니다.
누군가는 아주 절망적인 상황을 옷자락만 만져도 고침 받고 자유하고 구원 받을 것이라고 믿는 반면에, 누군가는 주님이 직접 믿을 것을 독려 하시고 믿음으면 딸이 구원 받겠다 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웃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믿음에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 했습니다.
믿음에 대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 했습니다.
주님의 초정을 받지 않았던 여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주님이 직접 찾아와 믿으면 구원 받을 것이라고 하시자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같은 구원, 다른 반응 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불신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믿음의 표현으로 어설프지만 간절함을 담아 주님 앞에 나와 그의 옷자락을 떨리는 손으로 만지며 나을 것을 믿는이 필요 합니다. 그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능력과 존재를 믿었던 그녀를 구원에 이르게 했습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야이로의 측면에서 구원은 그야말로 내가 한것이 없는데 받은 선물과도 같은 은혜 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무엇인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구해야 얻어진다고 알고 있지만 이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지만, 그 믿음도 사실 주님이 주신 은혜 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권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주님 앞에 ‘왜 나를 구원 해주지 않으십니까?’ 라고 따질 수 없는 존재 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전권에 달려 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던 우리를 구원해주셨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 믿음을 보이는 것만이 허락 되었습니다.
사실, 이 여인이 보인 행동은 대단하고 훌륭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이 어여삐 보시고 그녀의 믿음을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더욱이, 야이로의 딸이 “달리다굼”의 기적을 체험한 것을 보면 누구의 믿음이 좋아 구원을 주셨습니까? 온전히 주님의 자비이고 긍휼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각 사람은 구원 받을만한 어떤 선한 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믿음을 착각 하지 말자
그저, 떨리는 손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질 용기와 믿음만 보여도 엄청난 구원을 주시는 인애로우신 하나님 이다.
설령, 내가 주의 복음을 비웃던 사람이라도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예수 믿게 해주시기 위해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신다. 입니다.
주님을 찾아간 야이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
결과는 같았다- 구원을 얻음
우리 각 사람은 구원 받을만한 어떤 선한 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병마와 죽음 앞에서는 한낱 들풀 같은 존재.
인간은 가족의 죽음 또는 나 자신의 인생의 종점에서 나약한 존재 입니다.
그럴때,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소 들으십니다.
여인의 간절함을 들으심.
야이로의 절박함을 들으심.
군중속에서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 내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 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결론- 우리는 한 여인의 용감한 행동과 믿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죽음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하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라는 시 처럼,
수 많은 군중 속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던 그 여인을 찾아내시고 깊히 관심과 사랑을 주시고 그녀의 마음을 깊히 헤아리신 주님의 은혜가 풀꽃 같던 그녀를 다시 꽃과 같이 아름다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우리는 한 떨기 들풀
같은 존재로 서 있습니다.
우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시고 우리의 필요를 살피시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십니다.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든 권리가 박탈되었던 한 여인이 자유케 하고 구원 했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를 인정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엄청나고 거창한 믿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옷자락 잡는 것과 같이 미약한 믿음이어도 그 믿음으로 우리의 믿음을 인정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리시고 그 새 희망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보일 믿음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작은 도전 일수 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이웃들과 화목하고 껄끄러웠던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등의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떨리는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옷자락을 잡으시길 권면 드립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문제 속으로 초대 하시길 권면 드립니다.
주님과 상관 있는 삶으로 나아 가십시오.
오늘 그 믿음의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구원 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넒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한량 없는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하심이
우리교회와 주님의 귀한 자녀들과 그들의 생애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지어다